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서 코난 도일 (문단 편집) == 언론기고 == 코난 도일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정리한 백과사전 사이트에 따르면[[https://www.arthur-conan-doyle.com/index.php/Sir_Arthur_Conan_Doyle:Complete_Works#Essays.2C_Articles| 출처.]] 코난 도일이 집필 활동을 한 1870년부터 1930년까지 60년이라는 기간 동안에 언론에 기고한 글의 수가 '''1091편'''에 이르는데, 그 중 몇 개를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. * 영국 언론들의 부적절한 논조를 공박. * 이혼법 개정 협회 의장으로서 이혼 옹호 주장. * '''군인에게 방탄복을 입힐 것'''을 권고. * 이 시기 흥미로운 것은 [[제1차 세계대전]] 시기 [[독일 제국]]의 '''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예언했다는 것.''' [[http://www.joysf.com/4229853|코난 도일과 U-보트 아이디어]] * [[벨기에]]가 [[콩고 자유국]]에서 행한 [[레오폴드 2세|잔학행위]]에 대해, 맹렬히 비난.[* 다만 이 일은 당시 벨기에 왕 [[레오폴드 2세]]의 독단이였고, 벨기에 의회는 이후 레오폴드에게서 콩고 자유국을 빼앗아갔다. 하지만 벨기에 의회도 콩고에서의 잔학행위를 멈추지 않았기에 콩고 원주민 입장에선 거기서 거기. 벨기에가 콩고에서 한 일은 나치가 유대인에게 한 일보다 '''더하면 더했지''' 못하진 않지만 인지도는 훨씬 낮다.] * 영국 사법부가 혼혈인 변호사에 대해 [[인종차별]]적인 편견에 근거해 유죄 판결을 내리자 이에 반대하여 사건을 직접 꼼꼼히 조사했다. 조사 끝에 재판부의 결정이 틀렸음을 확신하자 강력하게 규탄했다. 이는 대중의 강한 관심을 끌어 결국 무고했던 피고가 '''무죄 판결을 받는 데 결정적인 영향'''을 끼쳤다.[* [[셜록 홈즈의 회상록]] 수록작인 [[노란 얼굴]]이라는 단편이 이 사건과 연관지어 자주 거론된다. 해당 작품 또한 코난 도일이 인종차별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. 간략하게 소개하자면, 아내가 흑인과의 초혼에서 혼혈아를 낳았음을 알게 된 백인 남성이 아내의 아이를 기꺼이 양녀로 맞아들이는 결말.] * 심지어는 '''영불 해협의 해저 터널이 가져올 이익을 예측'''하기도 했다. * 이 무렵 정치에도 관심을 가져 지역선거에 출마하기까지 하였으나, 아쉽게도 낙선했다. 하지만 그가 쓴 칼럼만큼은 큰 반향을 얻어냈는데, '''[[아일랜드]]에 독립 정부를 세워야 한다'''는 게 핵심이었다. '''[[아일랜드|그리고 결국....]]''' * 첫째 아들 킹슬리의 죽음 이후 말년에 심취한 심령론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기존 [[종교]]들과의 비교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기도 했다. 코난 도일이 제기한 수많은 주장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한 게 이 정도이다. 가정, 정치, 사회, 군사, 경제, 사법, 언론, 국제, 종교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글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음을 알 수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